2019-11-25

130528_결론은 '직장'이 아니라 '직업'이다

결론은 '직장'이 아니라 '직업'이다..


김명곤의 세상이야기 (노트) 2012년 1월 19일 목요일 오후 5:27... 


주변에 퇴직자가 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선배나 친구들이 퇴직하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후배들의 퇴직 소식도 자주 들려온다. 퇴직자들과 술자리가 잦아지다보니 '퇴직증후군'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 증후군 중 공통된 증상 하나가 '출퇴근강박증'이었다. 나 역시 장관직을 그만두고 출퇴근을 하지 않게 되었을 때 주변에서 퇴직자 취급을 했다. 하지만 나는 본시 출퇴근을 하지 않는 예술가의 생활에 익숙해 있어서 심각한 증세를 느끼지 못하고 가볍게 지나왔다. 그런데 젊어서부터 직장생활만을 해 온 대부분의 퇴직자들은 그 증상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퇴직 연령은 갈수록 낮아지고 평균 수명은 갈수록 높아지니 앞으로 우리 사회에 출퇴근강박증 환자는 엄청 늘어날 것이다. 

그 증상은 먼저 가족과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1식님 2식씨 3식놈'이란 우스갯소리가 우습게만 들리지 않을 만큼 퇴직자 본인뿐만 아니라 그와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부인이나 가족들에게도 힘겨운 일들이 밀어닥친다. 주변의 지인들이 지나가면서 던지는 "요즘 뭐하세요"라는 질문도 그들을 한없이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는 뭐니뭐니해도 '출퇴근'이다. 그래서 모두들 출퇴근하는 생활을 연장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허겁지겁 다른 직장을 알아보기도 하고, 스스로 사무실을 차려 새로운 직장을 마련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보다 몇 년 더 출퇴근이 연장되었다고 해도 그뿐이다. 언젠가는 누구나 직장을 잃고 출퇴근강박증의 포로가 된다. 포로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남들에게 감추고 싶은 우울증이나 좌절감이나 분노 등 부정적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린다. 직장에서 돈을 버느냐 못 버느냐는 이차적인 문제다. 내 이름 앞에 내세울 직장이 없다는 것, 아침을 먹고 집을 나가 갈 곳이 없다는 현실이 그를 이 사회의 낙오자로 몰고 가는 것이다. 

미국의 극작가인 아더 밀러는 '세일즈맨의 죽음'이란 희곡에서 해고당한 아버지가 자동차사고를 위장해 실직자인 백수 아들에게 보험금을 물려주고 죽어가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그 연극은 1940년대의 미국을 강타하고 지금까지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직장을 잃은 아버지들의 비극이 우리 사회에도 넘쳐나고 있다. 아더 밀러는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세일즈맨의 죽음을 통해 미국의 자본주의에 대해 통렬한 수술용 칼을 들이댔다. 그 칼은 신자본주의가 넘쳐나는 2012년의 한국사회에도 유효하다. 신자본주의의 꽃인 직장인으로 훌륭하게 살아 온 이 사회의 수많은 가장들에게 퇴직 후의 탈출구는 죽음 밖에 없는 것일까. 이 가슴 아픈 고민이 요즘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지인의 초청으로 지리산 부근을 여행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여행에서 만난 몇몇 분이 그 고민의 해법을 보여주었다. 한 분은 대기업의 임원에서 퇴직한 분으로 수천 점의 옹기를 수집한 취미를 살려 야산에 옹기박물관을 짓고 있었다. 내가 묵은 지리산 산자락의 아담한 펜션에서는 서울시의 공무원이었던 분이 부인과 함께 손님을 맞으며 소박한 산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는 목각과 서예의 취미를 살리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고 행복하다고 했다. 섬진강 부근의 화개장터에서는 도시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부친이 운영하던 양조장을 이어받아 최고의 막걸리를 만들려는 꿈에 불타는 젊은이를 만났다. 그들은 모두 훌륭하게 자신의 '직업'을 일군 사람들이었고, 자신의 직업에 대해 만족해했고, 여전히 꿈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 해법은 '직장'이 아니라 '직업'에 있었다. 그 직업이 옹기점 주인이면 어떻고 양조장 주인이면 어떤가. "직장이냐 직업이냐, 이것이 문제로다"하면서 햄릿처럼 회의하고 주저하다가는 출퇴근강박증에 걸려 죽음처럼 불행한 노후를 보내게 될지 모른다. 자신의 '직업'을 스스로 만들어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찬양 받고 이 사회의 꽃이 되는 날을 꿈꾸어 본다.(이 글은 1월 20일자 한국일보 '김명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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