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7

151119_코이의 법칙

코이의 법칙



2015년 11월 19일 


식당에서 뛰는 아이들이 사라졌다. 

예전엔 식당엘 가면 대화는커녕 식사를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아이들이 우당당탕 뛰거나 소리를 질러 짜증이 났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아주 작은 아이들까지도 신기할 정도로 얌전해져서 오히려 어른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어떻게 된 것일까? 요즘 아이들이 똑똑해져서일까? 교육이 잘 되어서일까? 

아니다. 아이들에 대한 가정교육이 잘 되어서도 아니고, 배려의 마음이나 윤리의식이 길러져서도 아니다. 바로 스마트폰 때문이다. 

젊은 엄마들은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스마트폰을 열어 아이에게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틀어준다. 그러면 아이는 주위에 대해 관심을 가질 사이도 없이 곧바로 집중하면서 영상에 빠져드는 것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러 온 것인지 그리고 누구와 있는 지도 잊어버린 채 오로지 화면 속의 내용에 빠져드는 것이다. 

눈길 한번 떼지 않고 스마트폰의 화면에 푹 빠져있는 작은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다가도 문득 저 아이가 자라면 어떤 아이가 될까 생각하면 걱정이 된다. 인지기능이 생기기전부터 영상에만 집중하다보면 자칫 현실과 사이버세계의 구분이 어려워지고, 사회적인 관계가 힘들어질 수 있다. 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질 것이다. 

산과 들로 쏘다니며 자연에서 스스로 답을 얻던 우리의 어렸을 때 모습과 비교해보면 요즘의 아이들은 확실히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하기 그지없다. 웬만한 지식과 과학상식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머리는 커지는데 비해 보호 속에서만 자라다보면 스스로 일을 헤쳐나가는 힘이 부족해지고 결국 ‘마마걸 마마보이’들이 되기 십상이다. 

삶에서 환경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리고 이 환경은 생태적이기도 하지만, 인위적으로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코이’라는 일본 잉어는 환경을 가장 잘 이용하는 물고기로 알려져 있다. 

이 녀석은 작은 어항에 넣어두면 5~8cm밖에 자라지 않지만,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두면 15~25cm까지 자란다. 그리고 강물에 방류하면 그 크기가 무려 90~120cm까지 성장한다. 같은 물고기인데, 어항에서 기르면 피라미처럼 작은 관상어가 되고, 흐르는 강물에 놓아두면 1m가 넘는 대형 물고기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까? 

생태계에선 종종 있는 일이다. 환경에 맞춰 성을 바꾸는 물고기도 있다. 물고기들의 몸을 청소해주며 살아가는 청소놀래미는 일부다처제를 선호하는데 수컷이 죽으면 몸집이 가장 큰 서열 1위인 암컷이 수컷으로 성을 바꾼다. 말미잘 속에서 사는 흰동가리도 암컷이 죽으면 곧바로 수컷이 암컷으로 되고 가장 큰 새끼가 수컷으로 성을 전환해 번식력을 유지한다. 모두 환경에 적응하는 생태적 모습들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생존을 위해 성전환까지 하는 물고기들도 놀랍지만, 환경에 따라 몸집을 달리 하는 코이의 변화는 놀랍기만 하다. 5cm의 관상어와 1m의 초대형어를 비교해보면 같은 물고기라고 할 수 있을까? 

코이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스스로 목표를 정한다. 그리고 그 목표대로 몸집을 키운다. 어항이나 수족관처럼 막힌 벽이 없는 공간에서는 마음껏 제 몸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그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 즉 어떤 환경에서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서 몸집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젊은 엄마들은 자녀를 키우면서 무엇보다 환경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우선 조용하게 하기위한 목적으로 떠들때마다 스마트폰만 들이대다보면 아이는 그 세계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처음엔 귀여운 애니메이션이지만, 점점 게임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사이버 세상에 빠져들어 결국 대형어로 자랄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에도 관상어처럼 그저 작고 귀엽게만 자랄 것이다. 환경은 인위적으로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 있다. 이 사회가, 어른들이, 그리고 부모가 아이들이 달려나갈 수 있도록 벽을 헐어주어야 한다. 

유영선 / 동양일보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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