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1

180228_무례한 사람을 만날 때. 어떻게 하면 단호하면서도 센스 있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까?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흔한 토크쇼 형식으로 여러 출연자가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한 남자 연예인이 코미디언 김숙에게 이렇게 말했다. “얼굴이 남자 같이 생겼어.” 이럴 때 보통은 그냥 웃고 넘기거나 자신의 외모를 더 희화화하며 맞장구치는데, 김숙은 그러지 않았다. 말한 사람을 지긋이 쳐다본 뒤 “어? 상처 주네?” 하고 짧게 한마디 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말투였다. 그러자 상대가 농담이라며 사과했고, 김숙도 미소 지으며 곧바로 “괜찮아요” 하고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화제가 전환되었다. 

이 장면을 보고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여자들은 일상에서 '얼평(얼굴 평가)'.'몸평(몸매 평가)'에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더욱이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여성의 대립 구도를 자주 활용한다. 외모가 아름다워서 칭찬받는 여성. 그리고 그와 비교되는 외모로 남성들에게 놀림받는 여성의 구도다. 여성들은 몸매가 항아리라거나 가슴이 작다거나 못생겼다는 등의 놀림을 받으면 한술 더 뜨면서 함께 웃곤 한다. 

혹시라도 기분 나쁜 티를 내면 "농담일 뿐인데 왜 이렇게 예민하냐"며 '프로 불편러' 취급을 받기 십상이라 대부분 그저 참는 쪽을 택한다. 그렇게 참고 참다 어느 순간 불만을 털어놓으면 상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걸 네가 싫어하는 줄 몰랐는데? 진작 말하지 그랬어." 

특히 나이 어린 여성일수록 권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우리 문화에서 자기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불편함을 그대로 드러냈다가는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아 두렵고, 군대식 문화에 익숙한 남성에 비해 ‘조직생활에 맞지 않는다’거나 ‘사회성이 떨어진다’ 같은 평가를 받게 될까 봐 속마음을 숨긴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곱씹는 것이다. 곱씹다 보면 결론은 늘 나의 문제로 수렴된다. 

'내가 오해 살 만한 행동올 했을 거야'. '그 사람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닐까?’ 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지나치게 예민한 나'만 남는다. 

그렇다고 강하게 불쾌함을 표현하면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기 쉽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죠?", "저 지금 너무 불쾌하네요" 같은 표현은 명확하긴 하지만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시도하기 어렵다. 한국 정서상 연장자나 상사에게는 그런 표현을 더더욱 하기 힘들다. 

어릴 때 나는 감정 표현의 적절한 농도를 몰라 관계에서 자주 실패했다. 그런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논쟁끝에 상대를 비난하는 말하기의 길로 빠지거나 분에 못 이겨 화를 내며 엉엉 울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참고 금했다. 무례한 사람을 만날 때. 어떻게 하면 단호하면서도 센스 있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김숙의 "상처 주네?"라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던 건 그래서였다. 간결하면서도 단호한 사실 그 자체인 이 말은, 상대를 구석으로 몰지 않고서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성공적으로 전달했다. 상대는 곧바로 사과했지만 상처 준 사람이 되었고, 김숙은 깔끔히 사과받고 넘김으로써 쿨한 사람이 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김숙에게 사과한 상대는 그동안 전혀 제지받지 못한 행동에 한 번 제동이 걸림으로써 '이 행동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자각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건 사실 그의 인생에서도 다행인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잘못인 줄 모르면 반복하기 마련이다.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무례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타인에게 제지당할 기회를 얻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갑질이 횡행할 수밖에 없다. 

* 출처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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