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1

180624_수줍은 인문학

수줍은 인문학


대형차는 신호를 잘 깐다. 탄력이 죽기 때문이다. 섰다가 이 단. 삼 단 기어 넣고 속도를 다시 높이려면 연료도 많이 들고 몸도 지친다. 커다란 보트를 막 노를 저어 나아가는 느낌이다. 

시내버스는 신호뿐만 아니라 정류장도 '잘' 까야 얼른 가서 밥을 먹는다. 사람이 밥만 먹는 것은 아니다. 담배 피워야지. 양치질해야지. 급하게 몰아넣었으니 억지로 방귀도 뀌어놔야지. 

'프로가 업무 중에 고객을 향해 방귀를 뀌어댈 수는 없는 일이다!' 

무정차 고발 들어가면 벌금 내고 쉬는 날 교육받고 누적되면 해고 사유니까 정류장 까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오히려 시내에서는 승객이 많아서 고민이 없다. 차에 탄력이 불은 상태에서 외곽 정류장에 한두 명 서 있을 때가 어렵다. 탈 사람인지 아닌지 잠정 고객의 움직임을 재삘리 분석한다. 귀한 보물을 싣고 달리다가 다치지 않게 서려면 30미터는 족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승객이 신호를 주면 좋은데 우두커니 서 있다. 일단 속도를 줄이고 동태를 더 살핀다. 대형차 기사에게 목숨과도 같은 탄력을 서서히 잃어간다. 고개라도 돌려주면 좋으련만 승객의 얼굴은 끝까지 버스를 향해 있다. 가까이 가서 보면 눈동자만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이미 버스는 멈춰 서버렸다. 


'기사하고 눈을 안 마주치겠다는 것은 지가 미안할 만한 일을 했다는 걸 안다는 얘기 아닌가!' 


사막의 오아시스처림 신호를 주는 영감님이 있다. 안 타니까 어서 가라고 열렬하게 손을 저으신다. 고마운 마음게 기사는 정류장을 지나며 인사를 올린다. 가뭄에 콩 나듯 정류장 뒤로 몸을 숨겨주는 할머니도 있다. 갑이 을의 노동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미의 정점이라고 본다. 분명 그분들의 삶도 고단했을 것이다. 

하루는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오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안 타니까 어서 가라고 손을 저어주고 있었다. 어린 학생이 손을 저어준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 모습이 하도 예뻐서 자발적으로 탄력을 죽이며 다가가 국군의 날 도열하는 군인처럼 거수경례를 멋지게 붙여줬다. 한 손으로는 입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는 빠이 빠이 하며 수줍게 웃어주는데 정말 일할 맛 났다. 그 아이에게 멋진 퍼포먼스를 선물할 수 있었던 나의 유연함도 좋았다. 

종점에 도착해 차 바닥을 닦으며 그 아이의 '수줍은 인문학'은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몹시 궁금했다. 

- 허혁의《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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