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6

제사역사/전통

제사역사/전통

  제사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만이 지내는 것으로 인류 문화의 중요한 요소이다.
제사는 동서고금의 어느 사회에서나 행해져 왔고 원시적인 미개 사회에서나 현대 문명 사회에서나 형태는 다를 뿐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문명 사회에서는 고급종교의 형태로, 미개 사회에서는 주술의 형태로 저마다 정성을 다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제사는 인류의 정신 작용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람을 다른 동물과구별하게 하는 중요한 하나의 잣대가 된다.

제사는 사람들의 인지가 상당히 진화된 단계에 이르렀을 때, 즉 그들의 의식 속에 귀신의 관념이 형성되기 시작한 때부터 행해져 온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 제사의 시대별 변천사
우리나라 제사문화에 대한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기록은 별 다른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삼국시대에 들어서야 자신의 조상을 제사지내는 의례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왕가에서부터 먼저 시작된 삼국시대의 제사의례는 중국문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제사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던 시기는 조선시대로 고려 말에 이르러 성리학의 도입과 더불어 ‘주사가례’에 따라 가묘를 설치하려는 운동이 사대부 사이에서 활발해지며 조상에 대한 제사가 관습으로 정착되어 갔다.

조선시대에는 제사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다.

왕실과 민간에서는 수많은 형태의 제사들이행해지고 있었다.

조선시대 예법의 표준은 왕실의 경우「국조오례의」였고, 민간의 경우에는「가례」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초기에는 불교 의례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어「가례」식의 유교의례가 사회전반에 쉽게 보급되지 않았다.

성리학이 심화되기 시작한 16세기 중엽부터 비로소 양반 사대부 사회에서「가례」가 정착하게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조선시대의 가정의례가 모두「가례」대로 시행된 것은 아니었다.

조선말기 이후 우리의 제사 관념에 큰 변화가 나타나게 된 것은 기독교가 도입되면서였다.

특히 일제 침략으로 조선 왕조가 무너지고 왕조를 지탱하였던 양반 계층이 몰락하자 양반 중심의 예법이 동시에 붕괴하였고, 유교식 제사 또한 그 사회적 존재 가치와 의미를 많이 상실하게 되었다.

현대의 제례는 대부분 유교 예법에 근거를 두고 있기는 하나 많이 간소화되었고, 특히 1973년에 반포 시행된「가정의례준칙」은 전통 예법의 모습을 크게 변질시켜 많은 문제를 낳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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