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1

180520_은인

은인


2018.05.08 
 

누구보다 평탄한 나의 인생에 절체절명의 사건이 일어났다. 스물아홉 여름날, 친구들과이십 대 마지막을 기념하며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학창시절에 했던 캠프파이어가 생각나 모닥불을 피웠다. 

그런데 잔잔하던 불씨가 갑자기 확 타올라 나는 얼굴에 3도 화상을 입고 말았다. 

곧장 응급실에 실려 가 치료하고 피부 이식도 몇 차례 받았으나 사고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내 오른뺨은 화상 흉터로 뒤덮였다. 

매일 밤 모든 게 꿈이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잠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머리맡에 둔 손거울로 얼굴을 비춰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 않았다. 

세평짜리 방에서 누워만 지냈다. 한 달 즈음 지났을까, 멀뚱히 천장만 바라보다 불현듯 이런생각이 들었다. 

만신창이가 된 건 내 얼굴이 아닌 마음이라고.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아파트를 나섰다. 

놀이터 쪽으로 걸어가는데 몇 발자국 안되는 거리가 왜 그리 멀게 느껴지는지. 죄인처럼 땅만 보며 걸었다. 

그때 누군가 내 팔을 잡으며 말을 걸었다. 

“처녀, 길 좀 물읍시다.” 

큰 보따리를 진 아주머니였다. 

“네? 저요?” 

놀란 나와 아주머니의 눈이 마주쳤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고 놀라기는커녕 

“우리 아들네 왔는데 112동이 어디예요? 찾기가 어렵네.” 

라며 거리낌 없이 길을 물었다. 당황한 건 나였다. 

“이, 이쪽으로 가시면 돼요.” 

나는 엉거주춤 서서 손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아주머니는 “응? 어디?”라며 재차 길을 물었고 결국 나는 112동까지 같이 가기로 했다. 

아주머니의 보따리도 함께 들었다. 

우리는 오 분 남짓 걸으며 마치 예전부터 알고 지낸 듯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 갔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아주머니는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만감이 교차해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두 번 다시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할 거라며 숨어 지내던 내게 얼굴 흉터쯤은 개의치 않고 다가온 아주머니가 고마워서. 

그분을 다시 만나면 말하고 싶다. 

덕분에 세상으로 나갈 용기를 얻었노라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해 본다. 

양승선 님 | 경기도 화성시 

* 출처 : http://www.positive.co.kr/blog/details/10?id=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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