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1

180715_{First 10-digit prime found in consecutive digits of e}.com

2004년 7월 9일, 출퇴근 차량으로 번잡한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의 101번 고속도로에 흥미로운 광고판 몇 개가 세워졌습니다. 이 광고판에는 광고를 낸 회사 이름도, 홍보를 하려는 제품명이나 이미지도, 근사한 광고모델의 환한 미소도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하얀 바탕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 하나만이 적혀 있었습니다. 

{First 10-digit prime found in consecutive digits of e}.com 

필기체로 쓴 e는 오일러수를 뜻합니다. 자연로그의 밑(base)이기도 한 오일러수는 2.718281828459… 라는 값을 갖는, 소수점 아래로 끝없이 숫자가 이어지는 무리수이지요. 광고판의 문장을 해석해보자면, '오일러수의 숫자 나열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10자리 소수(prime number. 1과 자기 자신 외에는 나누어지지 않는 수)’라는 의미입니다. 아마도 이 숫자값을 찾으라는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요? 

출퇴근길에 수많은 운전자들이 광고판을 보며 지나쳤겠지만, 이 문구가 뭘 뜻하는지 제대로 이해한 운전자는 아마 많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이 문구를 이해했을 뿐 아니라, 과연 정답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해한 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대학생이라면 학교에 가서 직장인이라면 출근해 회사에 가서 인터넷에서 이 답을 검색해 보았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인터넷에는 이 답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대부분 이내 포기하고 현업으로 돌아갔겠지요. 

대학생이라면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로, 직장인이라면 커피 한잔과 함께 서류더미 앞으로 말이죠. 

그런데 그들 중에는 ‘도대체 답이 뭘까?’ 너무 궁금해서, 수업이 귀에 안 들어오고 일이 손에 안 잡히는 증세에 시달린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뭔가 내게 도전을 걸어오는 것 같고,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고리즘을 머릿속에서 계속 궁리하는 경험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급기야 그들은 이 질문의 답을 직접 계산해보기로 마음먹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평소 호기심으로 충만할 뿐 아니라 자신의 호기심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들이었을 겁니다. 물론 그런 사람이 많진 않겠지만요.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C++ 같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로 간단한 프로그램을 짜야 합니다. 오일러수를 발생시켜 10자리씩 읽어들인 후 인수분해를 해서 소수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루틴을 돌려야 합니다. 

컴퓨터가 계산을 한 지 몇 초가 지났을까. 우리는 7427466391 이라는 답을 얻게 됩니다. 

아하! 이 숫자 뒤에 ‘.com’을 불이라 했으니, '7427466391.com’이라는 웹사이트 주소를 얻게 되겠지요. 도대체 이 주소는 뭘 의미하는 걸까요? 

이 답을 찾은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집으로 돌아가 아무도 없는 자신의 방에서 조심스럽게 7427466391.com을 인터넷 주소창에 입력해보았습니다. 아마도 밤 12시쯤 문을 잠그고 설레는 가슴을 안고 말입니다. 

그러면 ‘Congratulation!’이라는 축하 메시지와 함께 두 번째 문제가 나옵니다. 

"www.Linux.org 사이트에서 'Bobsyouruncle’라는 이름으로 로그인하세요. 단, 패스워드는 다음 문제의 정답입니다.”라는 문장과 함께. 

f(1)= 7182818284 
f(2)= 8182845904 
f(3)= 8747135266 
f(4)= 7427466391 
f(5)= ------------ 

이쯤 되면 누군가가 벌여놓은 사건에 휘말려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하자니 첫 문제를 푼 게 아깝고. 더 나아가자니 두 번째 문제는 훨씬 복잡해 보입니다. 

두 번째 문제 역시 오일러수와 관련이 깊습니다. 위 숫자들의 공통점은 오일러수 패턴 안에서 ‘합이 49가 되는 10자리 수열’들이라는 사실입니다(수학자 닐 술론은 이 수열을 ’A095926 sequence'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정답은 그중 다섯 번째 수열인 ‘5966290435’이 됩니다. 

이 답을 찾은 사람들은 이번에도 조심스럽게 사이트에 접속한 후 이 수열 패스워드를 이용해 다음 페이지로 접속해봅니다. 과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무엇일까요? 다시 한번 ‘Congratulation!’ 간단한 축하 메시지가 나오면서, 이번에는 구글(Google)의 채용사이트로 접속이 됩니다. 이 단계까지 통과한 사람들만을 위한 아주 특별한 사이트고요, 자신의 이력서를 제출하면 가벼운 인터뷰만으로 구글에 취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구글은 2004년과 2005년에 걸쳐 1만 5000명의 직원을 뽑았는데. 이것은 당시 사용한 채용 방식 중 하나였습니다. 

이 채용 방식은 당시 실리콘밸리에 사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우선 ‘이런 방식으로 직원을 채용하려 했던 구글의 직원들이 굉장히 창의적인 사람들이구나!’라 는 인식을 널리 퍼뜨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게다가 이런 과정을 거쳐 뽑힌 구글의 신입 직원들은 또 얼마나 명석한가요! 

이 채용 방식은 당시 미국 사회에서 구글의 창의성을 널리 알리는 적절한 에피소드로 회자되었습니다. 

이런 구글의 채용 방식은 저같은 신경과학자에게는 ‘창의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잘 관찰하고 파악해 그것을 채용 과정에 적절히 녹여낸 사례’로 읽힘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을 유형화할 수는 없겠지만, 흔히 그들은 공간에 무심히 배치된 도전적인 질문에 강한 호기심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들은 관찰력이 매우 뛰어나며, 흥미를 끄는 무언가를 발견하면 강한 호기심에 사로잡힙니다. 

그것이 어렵고 도전적인 질문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 중 하나는 ‘세상에는 무언가에 호기심을 느끼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는 점입니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들도 구글의 광고 문구를 보고 호기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창의적인 사람들은 아니겠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호기심 못지않게 놀라운 재능 하나가 또 있습니다. 바로‘강한 호기심을 잠시 느꼈으나 이내 그것을 억누르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을 살아가는 놀라운 억제력’ 말입니다. 

어린 시절만 해도 한동안 호기심에 사로잡혔지만, 학교에 들어가고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호기심에 사로잡혀 그것을 스스로 해결해보고 싶은 마음’에까지 이르는 경험은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대부분 우리는 잠시 무언가에 호기심음 느껴 궁금해하지만 그것도 그때뿐, 바쁜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하던 일에 집중하거나, 체내 에너지의 23퍼센트 이상을 먹어치우는 1.4킬로그램의 폭식꾼 ‘뇌’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뇌를 최소한으로만 쓰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음의 두 문제가 있습니다. 정답을 맞힌 분들께는 구글 취직의 특전을 드립니다. 지금 도전하세요!’라고 공지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마 사람들은 벌떼처럼 모여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몰두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두 문제를 맞힌 사람들은 굉장히 많았을 겁니다. 그것도 빠른 시간 내에. 하지만 이 문제를 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순전히 호기심만으로, 그것도 한 문제도 아닌 두 문제를 풀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 열정과 에너지를 쓰는 젊은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당신이라면 머리 아픈 광고판에 당신의 인생을 얼마나 할애했겠습니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호기심. 도전정신 같은 자발적 동기만으로 끝까지 몰두해 해답을 얻거나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건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강력한 특징입니다. 

호기심이나 꿈, 재미, 보람 등 다양한 내적 동기. 그리고 명예. 인정. 직위, 인센티브 등 외부에서 부여된 외적 동기. 이런 동기들에 지속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천착(穿鑿)하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 데 있어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가 잘 균형 잡힌 사람들이 세상을 의미 있게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 출처 : [열두 발자국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중에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