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7

041105_알고 보면 더 재밌다 <하류인생>


<하류인생>은 1950년대 후반 자유당 말기의 혼란기부터 1970년대 초 군사정권의 유신체제 시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태웅(조승우)은 정치적, 사회적 혼란기를 별 생각 없이 살아가면서 권력을 쥐고 흔드는 권력층에 기생하고, 또 권력을 쥔 자들은 주인공 같은 사람을 철저히 이용해 정권을 유지한다. 

그런 시대에서 살아남는 법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인생을 사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태웅. 그의 삶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반추하는 영화 <하류인생>은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20대 때를 회상하며 영화를 찍은 감독과 촬영감독, 그리고 제작자가 말하는 <하류인생>은 요새 젊은 관객들의 입맛에는 다소 안 맞을지도 모른다. 

60년대를 그리는 방식이 너무 거칠고 투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그 이면에 다가가면 거기에는 우리의 가슴을 움직이는 따뜻함이 베어있다. 영화를 보기 전 알고 가면 재밌는 <하류인생>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지금부터 마우스를 움직여서 같이 읽어보기로 하자.


임권택의 이름으로


<하류인생>에는 계약 대신 존경을 담보로 우정 출연하는 배우들이 있어 눈길이 간다. 특히 주인공 태웅의 어머니 역으로 등장하는 영화배우 이혜영은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아들과 상봉하는 단 한 장면 출연을 임권택이라는 이름을 믿고 마다하지 않았다. 이미 <티켓> <개벽> 등에서 임권택 감독과 함께 일한 바 있는 이혜영은 특유의 감정 표현으로 모자의 슬픈 정을 단숨에 보여주었다.


카메오를 보면 영화가 보인다


<하류인생>은 여느 영화보다 화려한 카메오 진용을 자랑한다.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의 제자들이 스승의 영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섰기 때문. 우선 소위 잘 나가는 배우들의 횡포 때문에 애만 태우는 감독 역은 <번지점프를 하다>의 김대승 감독이 맡았고, 주인공 태웅에게 “야. 지금이 어느 시댄데 깡패야”라고 호기를 부리는 감독 역은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에서 조감독을 맡은 바 있는 김영빈 감독에게 돌아갔다. 또한 파출소 안에서 전화를 쓰겠다며 바닥에 내려놓고 비굴하게 전화를 거는 사람은 김홍준 감독이며, <세기말>을 끝으로 2000년 캐나다 이민을 떠난 뒤, 다시 돌아와 새로운 영화를 준비중인 송능한 감독 역시 <하류인생>에서 검사 역을 맡아 출연하였다.


조승우를 위해 태어난 캐릭터 최태웅


<하류인생>의 캐스팅이 발표됐을 때, 대개의 반응은 의외라는 쪽이었다. 최태웅 역의 조승우는 <춘향뎐>에서 임권택 감독과 호흡을 맞춘 적이 있지만, 깡패로 출연하기에는 다소 유약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박혜옥 역의 김민선은 5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를 살아온 여인이라고 하기엔 신세대 이미지가 강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은 두 주인공을 확신을 갖고 선발했다고 말한다. 특히 조승우의 경우, <춘향뎐> 공개 오디션 때부터 깡패 역할로 기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지난해 4월, <하류인생>의 캐스팅을 통보받은 조승우는 2개월 동안 태권도 도장에 다니며 초단을 따는 등 기본적인 무술을 익혔고, 그 이후 토네이도 액션스쿨팀에 합류해 매일같이 영화에 필요한 액션을 연습했다. 영화가 크랭크업 하는 날까지, 하루도 몸이 성할 날이 없었던 조승우는 거의 모든 장면을 대역없이 해냈다. 후끈한 에피소드 하나. 조승우는 작년 크리스마스를 차태현, 김선아 커플보다 더 에로틱하게 보냈다. 홀딱 벗고 모텔을 뛰어다녔기 때문. 자신의 출연작은 모두 벗은 뒷모습이 등장한다고 말한 조승우의 변화된 몸매를 이 영화에서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홍상수 감독 전에 임권택 감독이 있었다


"저 양반이 연습을 엄청 시켜. 완벽하게 될 때까지 하는 거야. 옛날부터 필름을 아끼기 위한 게 아주 체질화돼 있어. 제작자 입장에선 제일 고맙지” - 태흥영화사 대표 이태원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시나리오가 없다. 배우들은 현장에서 그날 자신이 찍을 장면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거기에는 미리 준비해서 할 수 있는 연기가 들어갈 여지가 없다. 심지어 홍상수 감독은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배우들에게 진짜술(?)을 먹이기도 한다. 그런데 20년전부터 이런 식으로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임권택.


임권택 감독은 최근 20여 년간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한 채 영화를 찍어본 일이 없다. 그가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안 쓰는 이유는 현장의 분위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촬영 당일 촬영장의 모습이나 배우들의 느낌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서 영화속에 담으려다 보니 자연 시나리오도 빨리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촬영에 임박해서 시나리오가 나오긴 하지만, 여기에는 기본적인 이야기의 뼈대만 있을 뿐이었다. 리허설을 거듭 하는 와중에 이것조차 계속 바뀌어간다. 또한 배우들의 즉흥적인 연기를 통해, 최상의 결과물을 끌어내는 임권택 감독은 보통 한국영화들이 쓰는 필름의 반으로 영화를 완성한다. 철저한 사전준비, 99편의 연출을 하면서 생긴 노하우가 없었다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30년만에 영화음악계에 귀환하다


태흥영화사 대표 이태원은 <하류인생>을 준비하던 중, 노래방에서 신중현이 작곡, 작사한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부르게 된다. 바로 그 날, 이태원 대표가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임권택 감독도 그가 만든 <님은 먼 곳에>를 틀어놓고 있었다고 한다. <하류인생>에서는 이 노래가 여러번 반복되어 사용되는데, 그 노래 가사의 구슬픔이 가슴을 적신다. 그래서 신중현은 <하류인생>으로 영화 <연인들> 이후 20년만에 영화음악을 맡게 된다. 임권택 감독과 신중현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둘 다 자신들이 호흡을 맞춘 영화 제목을 기억해내지는 못했다.


“옛날에 못 이룬 영화음악을 이번에 한번 보여줘야지 하는 욕망이 솟아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과 내가 걸어온 시대가 맞아떨어지므로 한층 내 음악을 멋있게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굳이 말보다는 <하류인생>에서 표현하려 합니다.” - <하류인생> 음악감독 신중현



임권택 영화의 손길을 찾아라


<하류인생>의 명동 거리 중심에 자리잡은 미도극장은 가장 인기있는 영화들만 상영하는 일류극장. <이유 없는 반항>(1958), <마부>(1961), <007위기일발 소련에서의 탈출>(1964), <7인의 신부>(1965), <증언>(1973)의 간판이 올려져서 당시 시대상황과 관객취향의 함수관계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증언>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대종상 특별상을 수상한 임권택 감독의 작품이라 한 영화에서 40년의 시차를 두고 두 영화가 만나는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극중에서 태웅이 다리에 부상을 입고 허리띠로 지혈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쓰인 허리띠는 임권택 감독이 현장에서 직접 조승우에게 건네 준 것이라고 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임권택 감독과 이태원 대표의 실제 의상이 영화에 쓰이기도 했다.


역사의 산 증인들, 60년대 명동 거리를 완벽하게 재현하다


<취화선>에서 구한말의 암울한 종로거리를 생생하게 펼쳐보인 주병도 미술감독이 이번에는 <하류인생>의 60년대 명동 번화가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하류인생>의 비주얼 컨셉으로 임권택 감독이 주문한 것은 '화려하면서도 슬프게'. 이를 위해 주병도 미술감독은 전체적 색조는 청회색으로 설정하고, 시대적 고증과 영화적 상상력을 조화시켜 당시 유행 1번지, 문화 1번지였던 명동을 정교한 큐브 형식으로 재구축해냈다. 고층건물과 네온사인으로 화려함을 강조하고,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잔존하는 사회 분위기가 드러날 수 있도록 한옥과 양옥을 혼합한 일본식 건축양식도 설계에 반영했다. 벽보나 간판은 시대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260여개 간판의 서체를 일일이 수공으로 디자인했으며, 당시 사용되었던 타일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며 기술자를 수배하기도 했다.


또 눈이나 비가 내렸을 때 낙수와 고드름까지 계산하여 창문, 현관, 지붕 등을 튀어나오고 들어가게 했으며, 시멘트에 갖가지 재료를 혼합하여 표면을 울퉁불퉁하게 만들어 물이 고이거나 광선이 닿았을 때 윤기와 질감이 살아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자연의 빛보다 더 자연스런 빛’ 으로 유명한 김동호 조명감독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거리의 표정을 만들고, 임권택 감독과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춰온 영화소품계의 선구자(180여편에서 소품 담당) 김호길 팀장이 온기와 숨결을 불어넣어 마침내 <하류인생>의 명동거리가 탄생하였다. 학창시절에 쓰던 문구류, 영화포스터, 담뱃갑, 과일바구니 등 눈에 띄는 건 뭐든지 모으는 수집광 김호길 팀장의 개인 소장품은 물론, 국내에서 사라진 물품들은 해외에서 조달하는 등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공수작전에 힘입어, 무게만 총 3톤, 트럭 20대 분량의 소품을 배치하는 데만도 열흘 이상이 걸렸다.




당시 영화 검열 얼마나 심했나


영화 <하류인생>을 보면 그 당시 영화검열이 얼마나 심했는지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얼마나 심했을까? 그 시대를 몸소 체험한 임권택 감독의 말을 빌려서 설명하는 것이 가장 나을 듯 하다.


“그 시대의 촬영현장을 영화에 담았는데, 처음엔 연출부도 믿지 못했어요. 지금 영화일을 하는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사건들이 벌어지고 상황 또한 열악했으니까요. 지금 검열은 그 당시와 비교하면 눈 가리고 아옹할 정도라고 생각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했어요. 시나리오도 사전검열을 했고, 심지어는 영화제목 조차 마음대로 짓지 못했어요. 그 당시 제가 <알레스카의 늑대>라는 영화를 찍고 있었는데, 검열하는 쪽에서 알레스카가 함경도를 지칭하는 은어라고 제목을 바꾸라고 했죠. 제작자는 힘이 없었고, 당국은 저희에게 <왜 그랬을까요>라는 제목으로 하는 것이 어땠겠느냐고 제의했고 끝내 제목은 <왜 그랬던가>로 나가게 되었어요. 안보문제, 사회전반에 관한 어떤 불평도 해서는 안 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영화일을 하는 사람들은 고난의 연속이었죠."


<하류인생> 예고편의 비밀


단계적으로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예고편 같지 않은 예고편’으로 발표할 때마다 화제를 일으킨 <하류인생> 예고편. 이 예고편은 SM5와 오일뱅크 등의 굵직굵직한 CF를 만들어온 김종원 감독의 상류 작품(?)이다. 그는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을 모델로 광고로 찍었던 인연으로 이 예고편의 제작을 자청했다고 한다.


<하류인생> 관계자에 따르면, 김종원 감독은 이장호 감독의 연출부를 지내는 등 오래전 영화계에 몸담은 이력이 있다. 영화인 출신의 부모님과 영화학도인 아들을 둔 그는 영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해 <하류인생>의 촬영장에도 자주 모습을 보였다고. CF 촬영 당시에도 두 거장 감독들이 편안하게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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