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1

180301_떳떳한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낄 것

떳떳한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낄 것


내가 어릴 적엔〈성공시대〉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방송이었는데 

매주 인물이 바뀌지만 이야기의 서술은 언제나 동일했다. 

과거의 비참한 현실과 현재의 성공을 대비시키고 

엄청난 노력과 불굴의 의지가 그 간격을 메운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힘든 환경이라도 

노력으로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그건 능력주의의 시작이었다. 

개인의 능력과 ‘노오력’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자기계발서 같은 이야기. 



그러나 능력과 노력은 성공의 마스터키가 아닌 

여러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 

게다가 과거에 그러한 성공 신화가 가능했던 건, 

그때는 한국이 고성장 시기였고. 

다들 지지리 못살아서 개인 간 자본의 차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개인이 계층을 이동할 기회를 찾기 어렵고 

공정한 능력주의의 전제 조건인 기회의 평등은 지켜지지 않은 채 

부모의 자산, 배경, 계층의 이어달리기가 진행 중이다. 

물론 여전히 노력과 능력으로 큰 성공을 이룬 이도 있으나 

그렇다 해서 노력과 능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성공함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진실이 아니다. 



그들에겐 '운’이라는 비능력적인 요소가 동반되었고. 

소수의 예외가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력=능력=성공]이라는 등식은 

[게으름=무능=가난]이라는 등식으로 자동 연산되어서 

가난의 이유를 노력이 부족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차별과 계급을 정당화한다. 

무한한 기회가 열려있는데도 가난한 것은 너의 탓이니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가난하면 쪽팔리다. 

그러니 가난해 보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것도 아닌데 

학교엔 노스페이스나 K2쯤은 입고 가야 가오가 살고 

부녀회에선 비싼 아파트처럼 보이기 위해 

아파트 이름을 영어로 바꿔야 한다는 촌극을 벌인다. 



기회가 평등하지 않은 능력주의는 허구일 수밖에 없음에도 

성공시대와 자기계발서가 심어놓은 왜곡된 능력주의는 

우리를 부자인가 아닌가 하는 결과값에 맞춰 

우쭐함과 부끄러움 사이 어딘가에 놓이게 했다. 



하지만 막상 주변을 둘러보면 

그저 운이 좋아서 혹은 상속받은 자본으로 부를 이룬 부자가 한둘인가.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이웃이 한둘인가. 



과정은 스킵한 채 

편법을 저지르고 약자를 착취해도 

돈이 많은 부자는 당당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았어도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이 부끄럽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닐까. 


가난하다 해도 삶에 최선을 다했고 떳떳하게 살아왔다면 

그 삶에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세상에는 부끄러워해야 할 부가 있듯이

떳떳한 가난이 있다.'
 

* 출처 :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겨울 스페셜 에디션)] 중에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