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1

180426_[특집] 사소한 것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들

* 저도 매일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경험하려 노력하겠읍니다. 

좋은글 잘 읽었읍니다. 

[특집] 사소한 것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들


2018.04.06 
 

오늘 식탁에는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하는 삼겹살이 올랐다. 나는 상추에 고기 한 점을 올려 
아버지 입에 넣어 드렸다. 이렇게 사소한 일이 행복하고 감격스러워 순간 울컥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아버지는 설암에 걸렸다. 마른기침과 쉰 목소리, 혀에 돋은 좁쌀. 아버지는 
이런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차도가 없자 어머니에게 등 떠밀려 간 동네 병원에서 대 
학 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서를 받았다. 그리고 설암 진단이 내려졌다. 암도 두려운데 ‘혀에 생 
긴 암’이라니. 게다가 병은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아버지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수술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수술하지 않으면 전이되어 남은 시간은 길어야 십 개월이라고 했다. 하 
지만 그 수술조차 국내에서 단 한 번 시행되어 성공 여부를 확답할 수 없었다. 

혀는 3분의 1만 보존할 수 있다고 했다. 한쪽 턱과 볼을 절개하고, 전이가 의심스러운 
기관지도 동시 개복 수술을 해야 했다. 허벅지 살을 볼에 이식하고 목에 구 
멍도 뚫어야 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러니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운이 좋아 수술에 성공하더라도 불편한 몸으로 엄마와 내게 짐만 될 거라고 생각했 
단다. 의사는 그 마음 이해한다며 아버지와 같은 수술을 한 첫 번째이자 유일한 환자를 만나 
게 해 주었다. 아버지 마음을 움직인 건 뜻밖에도 그의 아내가 건 전화였다. 

“가족을 위해 용기 내세요. 우리는 그이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아버지가 수술을 결심하자 모든 것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버지는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나중에 보자, 우리 딸.” 하고 말했다. 그리고 반나절이 지나 그 문에서 다시 나왔다. 

아버지는 한동안 중환자실에 있었다. 나는 할머니 집에 머물며 아버지를 볼 날만 손꼽아 기다 
렸다. 한 달 뒤 아버지를 보러 가기 전, 절대 울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병실에는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다. 나를 향해 벙긋벙긋 입을 벌려도 바람 소리만 
났다. 애써 눈물을 삼켰다. 다행히 수술은 잘됐지만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했다. 퇴원하고도 
그 기간만큼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아버지는 미음만 먹으면서 그 힘든 시간을 버텨 냈다. 그 
리고 녹음기를 사서 “아, 야, 어…….” 하며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듯 연습했다. 매일 저녁 베 
란다에 나가 녹음기와 씨름하며 점점 긴 단어와 문장을 익혔다. 

언젠가 거울을 보던 아버지가 “수술 부위에 다시 혓바늘이 돋았네.”라고 말했다. 가족 모두 
혼비백산해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핀셋으로 꺼내 보여 준 건 어제 먹은 된장국에 든 팽이버 
섯. 그제야 우리 가족은 안도하며 웃었다. 

때론 이렇게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매일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경험한다. 밥을 먹고, 말하고, 
외출하고, 남들에겐 당연한 걸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혹시 비 
슷한 상황에서 수술을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용기 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어떤 모습이 
든 사랑할 가족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구민정 님 | 경남 김해시 

제13회 '생활문예대상' 대상 - 사소한 것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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