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단하십니다.
2005년 기사엔 자격증이 더늘어 52개라고 하네요...
(기사내용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137451)
2010년 지금은 몇개를 더 추가하셨을까?
궁금해지네요...
소병량교사님. 건강하십시요.
그리고 사실 저도 "맥가이버"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편이죠...^^
(제가 가진 이 병[病]은 '불치의 병'이라고 하네요...)
2005년 기사엔 자격증이 더늘어 52개라고 하네요...
(기사내용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137451)
2010년 지금은 몇개를 더 추가하셨을까?
궁금해지네요...
소병량교사님. 건강하십시요.
그리고 사실 저도 "맥가이버"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편이죠...^^
(제가 가진 이 병[病]은 '불치의 병'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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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 최다 보유 고교 교사 소병량
“자격증 따면서 삶의 보람 느껴요”
“자격증 따면서 삶의 보람 느껴요”

지난 2000년 12월 한국기네스협회에 등재되고 2001년 10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소병량(48) 교사는 8년여간 47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임예은 기자>
무려 47개의 자격증을 따내 한국 기네스에 등록된 ‘자격증 최다 보유자’ 소병량(48)교사. 제 1회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면서 시작한 소 교사의 ‘자격증 인생’은 20여년의 교사생활과 함께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딸 아이 생일은 기억하지 못해도 한 해 치러지는 국가고시 자격증 일정은 훤히 꿰뚫고 있을 정도. 1985년 공인중개사 바람이 한창 불기시작할 때 자격증을 따고, 1993년 공주 직업훈련원 교사 시절 다른 교사들에게 뒤지기 싫어 본격적으로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는 그는 통신관련 기능장을 시작으로 도장기술·소방설비·자동차 설비·승강기·방송설비 등 40개의 국가자격증과 침술·응급처치·마사지 등 6개의 민간자격증, 여기에 운전면허증까지 모두 47개의 자격증을 땄다. 이 때문에 2000년 12월에는 개인최다자격증보유자로 한국기네스북에 올랐고, 지난해 10월에는 서울교육청으로부터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북 익산이 고향인 소병량 교사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고등학교를 서울에서 졸업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세는 기울기 시작했고 졸업후에는 경기도 부천에서 자가수도를 설치하는 공사장 인부로 1년여의 생활을 보내기도 했다.
이후 전문대학에 진학,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돈으로 전파사를 차려놓고 주경야독해 서울산업대 3학년에 편입했고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경희대 교육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결국 교사 자격증을 손에 넣었다.
소 교사는 “1980년 고등학교 교사로 첫 부임했을 때의 환희와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배움에 목말라 하는 제자에게 하나를 주기 위해 열을 노력하는 열정을 쏟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그는 교사생활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학연이라는 인맥과 명문대 출신교사들의 자존심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를 자꾸만 작아지게 만들었다”며 “스스로 생각하는 피해의식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는 게 그의 말.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공주의 직업훈련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 곳에서 자신의 열정을 뿜어낼 곳을 찾았다. “동료들이 자격증에 관한 얘기만 하면 스스로 위축돼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의지가 절로 생겼다”는 것.
이 때부터 해마다 2∼3개씩 매년 자격증 시험을 보러다녔으며 실패도 수없이 했다. 하지만 소 교사는 두 딸로부터 ‘자격증에 미친 아빠’라는 말까지 들어가면서도 새벽 5시면 일어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해 온 까닭에 어느새 국내 최다 자격증 보유자가 됐다.
현재 독산고등학교에서 기술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소 교사를 지난 25일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8년간 47개라는 엄청난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 획득에 매달린 이유는.
▲ 나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인맥과 명문대를 우선시 했던 분위기에서 위축감도 많이 느꼈다. 나는 이것을 국가가 공인해주는 자격증을 따면서 따라잡으려고 했다. 건축과 기계, 정보통신 관련 자격증이 대부분이지만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로서 자격증 하나하나는 나와 학생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 47개의 자격증을 딴 지금, 그 전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나.
▲ ‘하룻밤 자고나니 스타가 됐다’는 말을 실감했다. 사실 별것도 아닌데 매스컴에서 많이 배려를 해줬다. 47개의 자격증을 따고 2000년 한국기네스에 등재되고 지난해 10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신지식인’으로 선정되면서 ‘신지식인 교사’‘별난 인생’‘대한민국의 맥가이버’등의 이름으로 TV와 신문에 소개됐다. 나에 대한 노력을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또한 스스로도 ‘어느 누구와도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 가정생활과 교사생활을 병행하면서 힘들었을텐데.
▲ 솔직히 언뜻보면 보잘 것 없고 쉬운 자격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47개의 자격증을 따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10여년간 자격증에 매달리면서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부모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또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자격증을 준비했기 때문에 시간을 활용하는데 상당히 힘들었다. 그러나 이제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채워나가려 하고 있다. 내가 배우고 익힌 조그만 것을을 배움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에게 베풀겠다.
소 교사가 딴 자격증들. 경락마사지, 시설리모델링컨설턴트, 조적기능사, 굴삭기운전기능사 등 눈길을 끄는 자격증이 많다.
- 닥치는대로 자격증에 매달리지는 않았을텐데. 어떤 과정으로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나.
▲ 공주직업훈련원 교사시절 동료 교사들과의 경쟁과 자격증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우선 전자기기기능장, 방송통신기사 같은 내 전공과목인 ‘전자·통신’분야를 먼저 따기 시작했고, 이와 연결된 ‘전기’분야를 파고들어 승강기기능사, 소방설비기능사 등을 땄다. 그러다 ‘기왕 시작한 바에 내가 혼자 집을 짓는데 필요한 자격증을 따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건축도장기능사, 보일러 시공기능사, 배관기능사 등을 준비했다. 현재 건축설비기사와 한식조리기사 등은 1차시험에 합격한 상태다. 그러나 최근 새로 개교한 학교생활로 인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 2차시험은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소 교사가 딴 자격증들. 경락마사지, 시설리모델링컨설턴트, 조적기능사, 굴삭기운전기능사 등 눈길을 끄는 자격증이 많다.
- 자격증을 획득했다하더라도 이를 활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인데.
▲ 주위에서 ‘그 많은 자격증을 다 쓰지도 못할텐데 뭐하러 땄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전자통신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기술과목을 맡고 있는 교사다. 따라서 내 전공이든 전공이 아니든 내가 따낸 자격증은 모두 기술이라는 과목의 범위안에 포함된 것이 대부분이다. 현재 기술교과서의 주된 내용은 ‘기계’와 ‘건축’‘자동차’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세부적인 내용까지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 ‘한국판 맥가이버’라고 불린다.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청할텐데.
▲ ‘나 혼자 힘으로 집을 짓는데 필요한 자격증을 따보자’는 나의 결심은 현재 80%정도는 이뤄졌다. 이 때문에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수리와 보수는 나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5년전부터 업자들을 부르지 않은 것 같다. 배관문제든 전기·통신·기계 분야든 왠만한 건 해결이 가능하다. 그 덕에 친척들부터 이웃주민까지 ‘이것 좀 봐달라’는 부탁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 8년여간 자격증에 매달리며서 가장 애착이 가거나 어렵게 따는 등 기억에 남는 자격증은.
▲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어렵게 딴 자격증들이다. 그래서 특별히 애착이 가거나 소홀하게 느끼는 자격증은 없다. 그러나 전자기기기능장같은 경우에는 2년동안 시험보면서 여러번 실패를 맞보기도 했다. 다른 것도 다 그렇지만 소방설비기사, 전자기기기능장, 공인중개사 등은 내가 지금 학교밖으로 나가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한 자격증들이다.
- 앞으로 더 딸 자격증이 남았나.
▲ 이제 이전처럼 자격증 따는 데 목을 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건설설비기사나 한식조리기능사처럼 1차시험에 합격한 자격증들은 학교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마무리 할 예정이다. 이제는 이렇게 딴 자격증들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학교수업이나 특별활동에 열정을 쏟고 싶다. 또한 자격증과 관련된 강의에 신경을 좀 더 쓰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경험과 노하우를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
안창환 기자 <top@ilyosisa.co.kr>
* 출처 : http://www.ilyosisa.co.kr/SUNDAY/SUN_0338/TM_0309.html(2002년 07월 09일 3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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