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방송 잘봤습니다.
* 우리 형제, 자매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도청으로 나오셔서 시민 학생들을 살려주십시오
우리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는 끝까지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우리 형제, 자매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광주 시내에 울려 퍼진 간절한 바람
*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한강 <소년이 온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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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의 꽃말?

나를 잊지 마세요

기념일에 관한 이야기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


나를 잊지 말아요
-오월이 오면

1980년 5월 19일





16세
고등학교 1학년 문재학


재학
"엄마 나 지금 친구 집인데 무서워서 혼자 못 가겠어요?

“저 좀 데리러 와주세요"




온몸에 느껴지는 살벌함


김길자
재학이 어머니. 그때 나는 무서웠지 군인들이 그렇게 있고








젊은 남자가 죽었대




구타당해 사망했다는 내용












사망자는
김경철 29세




다짜고짜 시작된 폭행


<그것이 알고 싶다> 2017년 방송
임금단/ 故 김경철 어머니. 곤봉으로 두어 번 내리치니까 쓰러지더라고 그래요









무차별
폭력










대검




우리나라 군인이 우리나라 국민을


인간사냥






적을 공격하듯
민간인을 상대로 끔찍한 폭행





우리나라 군인인지 의심스러운 정도






5.18 광주민주화운동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이유?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1979년 10월 26일


10.26사태.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사건


국가비상사태



계엄선포 후
전면에 나서는 건?


군인

계엄령
헌법,법률 일부의 효력을 일시 중지하고 군사력을 동원하여 사법, 치안을 유지하는 긴급조치


그 후 일어난 군사반란




12.12사태. 전두환,노태우 등이 이끌던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


당시 대통령은?

권한대행 이후 선출된
대한민국 10대 대통령 최규하


당시 실권을 손에 쥔 건 보안사령관 전두환















전두환은 퇴진하라

뜨겁게 달아오른 민주화 열망








80년 5월17일 비상계엄전국확대




명분은 북한의 침공 가능성


혼란스런 정국
틈을 노린 북한의 침략 계획?













정치활동중지. 전대학휴교령. 정치활동 일체 금지






공수부대
낙하산, 수송기 등으로 공수 낙하하여 기습 점령 및 작전 전반에 기여하는 특수부대





피범벅이 된 사상자가 속출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기자들의 사직서.









완벽히 고립된 광주




정작 피를 흘린 건 수많은 시민들과 일부 군인

14살 박기현 군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날


자전거 타고 서점에 책 사러 나갔다가 계엄군 진압봉에 머리를 심하게 맞아서 사망


24살 최미애 씨 집 앞 골목에 남편을 마중 나왔다가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뱃속에 있던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남


11살 전재수 군 뒷동산에서 미끄럼 놀이하다가


총소리 듣고 놀라서 도망치는 중에 벗겨진 고무신을 줍다 빗발치는

빗발치는 총알에 맞아 사망함







SBS스페셜 '그녀의 이름은' 2020년 방송
남민아 / 당시 광주시민 다들 이렇게 안 좋은 상태인데,






광주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시민군'




























헌혈을 위해
병원을 찾은 수많은 시민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는거야








홍금숙
당시 18세
오빠들이 몇 날 며칠 나가서 시위를 했었어요
























완전히 총을 다다다다 말도 못 해, 총소리가 아주














보니까 피가 사방에서 펑펑 새 나와요



































버스에란 시민은 총 18명 그중 17명 사망

유일한 생존자였던 홍금숙 씨




박영순
5월 27일 가두방송 주인공

SBS스페셜 '그녀의 이름은' 2020년 방송. 제가 한 세 번 정도 방송했어요

광주 시민 여러분


_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도청으로 나오셔서 시민 학생들을 살려주십시오

우리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는 끝까지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우리 형제, 자매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광주 시내에 울려 퍼진 간절한 바람




출처 노먼 소프 기증자료 특별전




문재학
안종필

사망한 채 발견

당시 16살 광주상업고등학교 1학년




작전수행 중에 사망한 시민은 한 명도 없습니다


전두환

정적 김대중

김대중등 37명 내란음모 혐의 내란음모·시위선동


사형선고

1980년 9월 대통령 취임




김길자 / 故 문재학군 어머니. 유족 2세 모임을 한다고 창설하는 날이에요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젠가 뚫고 나올 수밖에 없다

진실의 아우성




외교행낭
재외공관과 본국 간에 주고받는 특별 외교 우편물




장용주 비디오테이프 주인

나는 신원이 신부예요













비디오테이프에 무슨 내용이 들어있을까?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세 번째 독재자가 권력을 잡아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모든 기회를 가로막았습니다













꿈에도 소원은 자유


이 정성 다해서 자유





1980년 5월
광주를 담은 외신 보도

독일에서 영상을 구한 장용주 신부











































"믿을 수 없는 일이 광주에서 일어났구나"

폭도! 새빨간 거짓이었구나


국회까지 퍼진 광주의 진실




이해찬 / 당시 국회의원
공식적으로는 한 번도 발포 명령을 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하셨죠?

이희성 / 80년 5월 당시 계엄사령관
그렇습니다 자위권이 발포 명령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희성 / 80년 5월 당시 계엄사령관 있겠...있었겠죠



말단 부대의 사건입니다

발포가 있었으나
명령을 내린 사람은 없다!?

자위권 발동



전두환의 입장은?



2003년 인터뷰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


그러니까 계엄군이기 때문에, 계엄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군대라는 것은 지휘계통에 의해서 움직이는 거요

나는 계엄사령관 부하요




"광주를 진압하고 내가 대통령이 됐다" 이렇게 나오더라고


오히려 말투가 떳떳한 말투예요

국민 기만하는 소리만 하고 있어



당시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던 전두환













전두환 사형

당시 판결문


피고인 전두환은 보안사령관 겸 합수 본부장으로서 직분을 망각하고

군부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이용하여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가하는 결과를 발생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병력을 동원하여 헌법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과정에서 발포를 하도록 함으로써

수많은 사상을 발생하게 한 점


피해자들 및 피해자의 유족 등이 그 이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자신이 범한 죄의 법정 최고형을 피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수감 후 2년 만에 특별사면




2021년 세상을 떠난 전두환


사죄와 속죄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젊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는 아직 감정이 안 좋나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아놓고

천억이 넘는 추징금 아직 검찰에 납부 안하셨잖아요.


발포명령 부인합니까? 왜 이래




박현옥 / 5.18 유족
11월 23일 전두환이 죽은 날 아니에요?






김태찬 / 5.18 피해자
그렇게 가면 안 돼요



그 사람이 자기 권력을 잡기 위해서




한 사람 인생, 한 사람 인생이 아니라 한 가정이 무너졌어요



274 명 사망
3,700여명 부상

23명 사망 115명 부상

신고된 행방불명자 400여 명

공식 인정된 피해자 78명



40년이 지났지만 5·18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홍금숙 / 5.18 피해자
행방불명자, 그게 우리 큰 숙제예요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봐요 저는 몫이라고





최병문 / 당시 공수부대원 옛날 우리 동료들이 보면

한 번 용기를 내줬으면 해서



'그때 어떤 사람 어디에 묻었다' 이런 식으로만 얘기해줘도





우리 5.18을 잊지 마세요

현재 5.18 진상 규명조사가 진행 중


76세 할머니


5.18을 똑똑히 보았기에 얼마나 소중한 물건인지 압니다



머리에 두른 사람, 노래 부른 사람, 두루 사용하였답니다

얼른 보면 한갓 손수건이기 때문에



저는 너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껏 가지고 있던 물건,


조마조마하면서 가지고 있던 순간들 어딘가 가슴 아린 듯한,


눈물이 날 듯한 노란 손수건입니다 잘 간직해주세요

5.18 당시 시위하던 학생이 직접 던져 준 손수건

40년 넘게 간직해온 할머니

우리 후손들이 영원히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기증하신 거 같아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한강 <소년이 온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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