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 없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놀 기회 자체가 적고, 그조차 철저히 상업화된 장난감들이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의력이 없는 아이들은 무엇이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문제해결 능력도 떨어집니다. 창의력은 ‘제대로’ 놀 때만 길러집니다.”
미국 하버드 메디컬스쿨 수잔 린 교수(56)는 아이들이 제대로 놀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심리학자 출신인 린 박사는 놀이치료를 하다가 아이들의 세계에 마케팅이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걸 깨닫고 이 분야 연구를 계속해온 전문가. 지난 28~30일 동양·오리온 그룹의 서남재단(이사장 이관희)이 주최한 ‘국제유아교육 심포지엄’에 참석해 ‘위기에 처한 아이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놀이’라는 제목으로 기조강연을 했다.
린 박사는 “실제로 많은 선생님들이 창의력이 없는 아이들은 질문이나 호기심이 없다. 이야기를 지어보라고 해도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본 대로 말할 뿐 자기생각이 없다고 얘기한다”고 전했다.
린 박사가 가장 큰 위기상황으로 진단하는 것은 아이들의 놀이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장난감들이 점점 창의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상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텔레비전과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화된 상업적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 때 아이들은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본 대로, 들은 대로 따라하게 돼 자신의 세계를 구출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린 박사는 이런 것들은 엄밀히 말하면 장난감이 아닌, ‘정크 토이(쓰레기 장난감)’라고 했다. 레고같은 블록놀이도 점점 놀이를 규격화시키는 ‘키트’로 만들어지고 있단다. 역설적으로 요즘 장난감 회사들은 그런 장난감들을 ‘교육적인 장난감’이라 말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못박는다. 교육적이기는커녕 전자음과 진동, 화려한 기능으로 재미있어 보이지만 놀이방법이 정해져 있어 예전 장난감들에 비해 재미도 없다고 했다.
린 박사는 17살된 딸이 어렸을 때부터 텔레비전 등 많은 미디어에 노출시키지 않고 장난감을 줄 때는 상업화된 인형을 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단다. 퍼즐이나 블록, 의상놀이, 미술놀이들을 즐기며 자란 딸은 린 박사 스스로 평가해도 아주 만족할 만큼 잘 자랐다며 뿌듯해 했다. 자기의 생각이 확실하고 무엇에든 가치를 부여할 줄 알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선 아주 협조적으로 컸단다. 린 박사는 아이들이 캐릭터 상품들에 빠져든 후엔 장난감을 사지 않을 수 없으므로 어렸을 때부터 미디어 노출을 제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제안한다.
“장난감과 아이들의 창의력 문제는 가족문제가 아닌 사회문제입니다. 조만간 미국 내에서 아이들에 대한 마케팅 과다 문제도 아동비만이나 환경문제 같은 공동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린 박사는 “우선은 이런 인식을 확산시키고 아이들 대상의 마케팅 자체를 줄이도록 법개정 운동을 할 것”이라며 한국에도 이런 움직임이 확산되기를 기대했다.
〈송현숙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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