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2

120126_질문할 줄 모르는 시험 선수만 양산하는 한국 사회

질문할 줄 모르는 시험 선수만 양산하는 한국 사회


이 모든 문제가 시험 교육에서 비롯됩니다. 한국처럼 정원이 3,000명 남짓인 한 대학을 두고 50만 명이 경쟁하는 시스템에서는 교육의 목적 이 시험이 될 수밖에 없어요. 물론 시험은 필요합니다· 제대로 공부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필요해요. 하지만 시험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객관 식이고 주관식이고 가릴 것 없이 대답하는 데만 길들여지죠. 질문은 하지 못하고 우리 뇌는 굳어져만 갑니다. 

3년 전에 ‘창의성’ 관련 심포지엄에서 이런 얘기를 했더니 자연과학쪽 대표로 참석한 분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어요. 물리학을 가르치는 분이었는데, 시험과 관련해선 한 번도 겁을 먹은 적이 없대요. 왜냐하면 출제될 문제를 다 외우면 끝이니까요· 저도 교수지만 시험문제를 내려면 뭔가를 봐야 하지 않겠어요? 철학은 그나마 덜한 편이지만, 국 · 영 · 수는 뻔하잖아요. 똑똑한 학생들은 출제자가 볼 만한 걸 다 외워 버리는 겁니다. 그분은 10 명만 뽑는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갔는데, 첫해에는 미국 애들이 너무 한심했대요. 뭐 이렇게 모르는 게 많나 싶어서요. 2년째에는 얘들도 제법 하네 싶더니 3년째에는 자기가 뒤처지는 걸 느꼈답니다. 4년째가 되자 차이가 완연하더랍니다.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 친구들은 스스로 질문하는데 자기는 묻지를 못 하더라는 겁니다. 이건 우리 학계의 문제이기도 하죠. 그분 말씀이 자연과학계에서는 〈 네이처〉 나 <사이언스> 에 제1저자로 이름을 두 번 올리면 평생을 먹고산대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제1 저자로 이름을 두 번 올린 사람이 아직 한 사람도 없답니다.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릴 때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가 하면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거래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묻는 걸 못한다는 거죠. 


* 출처 :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중 (학벌사회의 용기 있는 낙오자들, 미래를 열다-김상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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