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회장님의 걸어온 길입니다.
참고로 저의 아버지와 동갑 이십니다.
참고로 저의 아버지와 동갑 이십니다.
"생활력 강한 어머니를 보며 도전정신 익혔죠!"
“생활력 강한 어머니를 보며 도전정신 익혔죠!”
열정 넘치는 도전의 사나이, 조시영 대창그룹 회장이 걸어온 길
“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릴 때부터 갖가지 힘든 일을 하면서 세상살이에 필요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저는 허약한 아이였던 덕분에 운동을 시작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던 덕분에 만나는 모든 사람이 제 선생이어서 모르면 묻고 배우면서 익혔습니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神)’으로 추앙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경영철학에서-

일본 기업인 ‘마쓰시타 경영철학’을 삶의 지표로 삼아
자수성가로 대창그룹 창업주가 된 조시영(趙時永: 70세) 회장을 군산 미즈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일찍이 일본의 전설적인 기업인(CEO)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 경영철학’을 삶의 지표로 삼는다. 기업 경영도 정직과 도전, 창의와 상생 등을 핵심 가치로 정한다. 마쓰시타는 스물세 살에 전기제작소(파나소닉 전신)를 설립, 훗날 일본 최고 갑부가 되는 입지적인 인물. 항상 미래에 대비하는 자세, 자신의 단점을 소중한 경험으로 체화하는 자세, 젊은이처럼 공부하고 생각하는 자세 등이 그의 성공비결로 알려진다.
“가난, 허약체질, 초등학교 4학년 중퇴 등 자신의 약점들을 성공의 바탕으로 삼았던 마쓰시타의 성공스토리는 농사로는 꿈을 이루지 못하겠기에, 일찌감치 서울로 올라가 사업을 시작한 나의 경우와 흡사한 점이 많았습니다. 가난하고 배고프니까 일을 열심히 해야 했고,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해 건강을 관리해야 했고, 대학교육을 못 받았으니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던 점 등···. 소는 비빌 곳이 언덕이라지만 나에게 언덕은 나 자신이라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뛰었죠.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습니다.”

그랬다. 1944년 12월 25일 전북 군산시 성산면에서 빈농의 8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조 회장은 어려서부터 무척 쇠약했다. 네 살 무렵엔 괴질에 걸려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천우신조로 살아나기도 했다. 아버지는 무능했고, 어머니가 10명이 넘는 가족의 생계를 떠맡았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호미를 무기 삼아 가난과 전쟁을 치렀다. 달걀, 잡곡, 푸성귀 등을 이고지고 다니면서 보따리장사도 했다. 하지만 가족 모두가 배부르게 먹기에는 늘 부족했다.
“할아버지·할머니에 아버지 형제분들, 우리 8남매 해서 가족이 열여섯이나 됐는데요. 어머니는 발가락이 삐져나온 고무신을 신고 20리(8km)가 넘는 군산까지 하루에 두 차례씩 오가며 생계를 꾸려 나갔어요. 짐이 많을 때는 제가 짐꾼 역할을 했고, 뒷산(마초산)에 올라 어머니를 기다리곤 했죠. 장남으로 태어난 저는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를 도와드리면서 성공에 대한 욕망과 도전 정신을 자연스럽게 익힌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마쓰시타와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해서 그런지 그의 경영철학이 가슴으로 느껴집니다.”
조 회장은 “성공한 경영인이 되려면 직원, 거래처, 고객 모두와 즐겁게 상생(相生)하는 기업문화 정착에 앞장서겠다는 각오로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하고, 목표를 정해서 반드시 실행해야 하며, 미래를 개척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상대에게 신뢰를 쌓는 것도 상생이고, 고향을 사랑하는 애향심도 상생이고, 정성이 담긴 성금이나 봉사정신도 ‘상생의 길’일 것”이라고 덧붙인다.
외롭게 떠다니는 돛단배 바라보며 이웃의 소중함 깨달아

조 회장의 고향 성산면 마동마을은 마초산(麻草山)을 중심으로 올망졸망한 구릉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아늑하고 고즈넉했다. 특히 숲이 무성한 오성산(227m) 계곡 주변의 암자와 고사지(古寺址)는 봄가을 소풍은 물론 아이들이 가장 즐겨 찾았던 놀이터. 소년 조시영은 아랫마을 윗마을 아이들과 공치기(야구)도 하고, 돼지 오줌통으로 축구도 하고, 논바닥이 꽁꽁 어는 겨울에는 썰매도 타고, 토끼몰이도 하는 등 자연과 더불어 성장하면서 호연지기를 길렀다.
백제인의 우국충절 정신이 깃들어 있어 예로부터 군산의 영산(靈山)으로 전해지는 오성산(五聖山). 정상에 오르면 발아래로 채만식의 대표작 <탁류>를 연상시키는 금강의 우람한 물줄기가 태연히 흐르고, 군산 시가지는 물론, 충남 서천과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어린 조시영의 꿈과 희망을 키워주기에 충분했다. 소년 조시영은 외롭게 나뭇잎처럼 떠다니는 돛단배를 바라보며 이웃의 소중함과 나눔의 행복을 깨닫는다.
조 회장의 성산초등학교 급우 오희택(시택)씨는 “조시영이는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무척 순하고 착했으며, 말은 없어도 마음은 신중하고 깊은 학생이었다”며 “성공한 사업가가 된 지금은 고향 농민들과 자매결연을 하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작물과 특산품(장아찌)을 회사 식당에서 사용할 정도로 애향심이 남다른 친구”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해마다 모교 장학금을 보내오고, 마을 경로당 부지도 제공했단다.
‘말은 제주도,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어른신들 말씀 듣고 서울행 결심

조 회장의 유년기는 해방(1945) 후 남북한 단독정부수립(1948), 민족의 최대 비극인 한국전쟁(1950~1953) 등이 보여주듯 현대사의 격변기였다. 가난과 불신으로 사회는 극히 혼란스러웠고, 학교는 휴교가 잦아 부잣집 자녀들도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기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조시영 학생은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금새)의 특별한 관심으로 군산남중에 진학한다. 조숙했던 그는 자신의 진로를 중학생 때 스스로 결정한다.
“집이 워낙 가난해서 상급학교 진학은 생각도 못 했죠. 그런데 이금새 선생님이 찾아와 ‘조시영은 꼭 중학교 시험을 치르게 해야 한다’고 권하셨고, 어머니가 기꺼이 받아들여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인생의 진로에 가장 영향을 끼친 곳은 학교가 아닌 마을 정자나무 아래였어요. ‘말(馬)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서 시작하는 것이 성공하기가 좋다.’는 마을 어른들 얘기가 가슴에 와 닿아 상경을 결심하게 됐죠. 농사로는 도저히 꿈을 펼칠 수 없겠다고 판단했던 것이죠.”
중학교를 졸업한 조시영은 ‘성공한 기업인이 되기 전에는 고향 땅을 밟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집을 나섰다. 장항선 기차를 타려고 해망동 도선장(나루터)에 도착해서 배를 기다리는데 오성산 줄기가 아슴하게 보였다. 그 순간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친구들 모습이 푸른 하늘에 그려지면서 왈칵 눈물이 나왔다. 그는 “배 기관실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육중한 엔진 소리가 울음소리처럼 슬프게 들리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라며 당시 추억을 회상했다.
‘맨발의 청춘’으로 시작, 글로벌 기업 CEO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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