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0

140210_"생활력 강한 어머니를 보며 도전정신 익혔죠!"_조시영 대창그룹 회장_(2/2)

원효로에 있는 소규모 비철금속 공장에 취직한 조시영은 매일 새벽 4시에 기상, 청소로 하루를 시작했다. 월급도 없는 직장인. 배가 고프면 참았고, 옷이 떨어지면 벗고 다녔다. 밑창이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새벽마다 부근 재래시장을 돌며 고물(원자재)을 수집, 자전거에 싣고 오전에는 왕십리, 오후엔 영등포 공장으로 날랐다. 그때 얻은 별명이 ‘영등포 맨발의 청춘’. 그럼에도 밑바닥 생활이 창피하지 않았고, 훌륭한 CEO가 되겠다는 꿈을 하루도 저버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눈물겨운 ‘맨발의 청춘’ 생활 5년이 지난 1968년 목돈을 손에 쥔다. 인심이 후한 공장 주인이 고생했다며 퇴직금 조로 50만 원을 준 것. 처음 만져보는 거액이었다. 어디에 쓸까 고민하다가 적지만 고향에 투자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군산으로 내려와 전답 200평을 사들인다. 손바닥 넓이의 땅이지만 처음으로 등기를 내고 땅 주인이 되니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었다. 자신감도 생겼다. 그 전답은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청년 조시영은 1968년 소규모 가내 수공업으로 경영인의 첫발을 내디딘다. 그는 원자재 구매, 생산, 영업, 관리 등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을 번창시켜 나갔다. 그러나 1970년대 초 거래처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그동안 벌어놓은 재산 1200만 원을 모두 떼인다. 망연자실. 그럼에도 맨발의 청춘 시절에 쌓은 신뢰와 신용 덕에 거래처들을 찾아다니며 외상으로 원자재를 구매할 수 있었고, 피해도 생각보다 빠르게 복구했다. 

“1973년 유류파동에 불경기까지 겹쳐 위기를 맞았지만, 많은 분의 도움으로 고비를 잘 넘겼습니다. 위기를 넘기면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듯 1974년에는 반도체·전기·전자부품, 자동차, 선박, 산업용, 기계류 등 첨단 기초소재로 활용되는 황동봉(黃銅棒) 전문 제조업체 ‘대창공업사’를 창립했습니다. 그 후 연 30% 이상 흑자를 기록하면서 1977년에는 ‘대창공업주식회사’로 법인전환을 했어요, 그때부터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초부터 일본을 방문했는데요. 선진기업들의 경영방침을 배우기 위해서였죠. 한두 번 다니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게 있더군요. 2~3년 후에는 유럽, 동독까지 다녔는데 진취적인 모습에서 제 사고도 바뀌더군요. 어떤 품목을 생산하든 세계 1등 기업을 만들면 그 어떤 불황도, 불경기도 견뎌낼 수 있으니 업종에 얽매이지 말자는 거였죠. 결국, 비철금속 부분에 집중 투자해서 1985년 반월공장, 1995년에 오늘의 시화공장을 완공했습니다.” 
 

(주)대창은 외환위기(IMF) 시절인 1998년 국제금융공사(IFC)로부터 3650만 달러 규모 투자유치에 성공한다. 외자유치 후 경영정보시스템(MIS)을 도입, 날로 발전하여 2001년 동탑 산업훈장, 2002년 우수 자본재 개발 대통령상을 받는다. 2004년 1억 불, 2006년 2억 불, 2008년 3억 불 수출탑을 수상하면서 황동봉 분야 국내 1위, 아시아 1위, 세계 3위를 마크하는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다. 2011년에는 대창그룹 2020 비전 선포식을 개최하기도. 
“조 회장은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기업인”
대창그룹은 2013년 12월 현재 계열사 6개와 미국·중국에 3개의 해외 지사를 두고 있다. 계열사는 1974년 설립한 (주)대창을 모체로, 1988년 설립한 (주)서원, 그룹 성장의 동력으로 2002년에 인수한 (주)태우, 국내 최고 황동봉 밸브회사 (주)에쎈테크, 국내 압연업체 (주)아이엔 스틸, 2005년 중국에 설립한 (주)개평대창 등. 그중 (주)서원은 그룹의 지주회사이며, (주)대창은 환경친화적 기업으로 세계 최고 품질의 동합금 제조업체로 인정받고 있다. 

재벌 및 CEO(최고경영자) 경영성적 평가분석 사이트 ‘CEO 스코어’(대표 박주근)가 2013년 7월 국내 500대 기업의 현직 CEO 668명의 학사 학위를 조사한 결과, 고등학교 졸업자는 조 회장을 비롯해 4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500대 기업 전체 CEO 가운데 0.6%에 불과한 비율이다. 고졸 출신이 국내에서 최고경영자 직함을 갖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래프이기도 하다. 

항도 군산은 예로부터 공업도시로, 고려제지, 한국합판, 경성고무, 백화양조, 청구목재 등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향토기업이 많았다. 전국 각지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가 되었고, 1970년대 방위성금 1억 원을 기탁한 기업이 전국에서 처음 나올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향토기업 리더(CEO)들은 후계자를 양성하지 못한 채 모두 고인이 됐으며, 기업들도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서 조 회장의 경영철학과 애향심이 더욱 돋보이는지 모른다. 

김항석 성산초등학교 총동창회장은 “조시영 회장은 고향의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기업인,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꿈을 실현한 군산의 자랑스러운 기업인이다”고 평가한다. 군산대 경영학부 교수와 대학원장을 역임한 그는 “특히 위기 때마다 도전의 기회로 삼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낸 조 회장의 기업 성공담은 전문경영인이 되려고 공부하는 요즘 학생들에게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덧붙임: 조시영 회장은 지난 2003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황동 제조업체로 성장시킨 노력과 경영전문가로서 실무, 이론 등을 바탕으로 주위 상공인과 대학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한국 산업기술대학교로부터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외에 경기도 시흥시 교육발전진흥재단 이사장(2004~2006), 한국경영연구원 기업가회 회장(1999~2004), 시흥시 상공회의소 회장(1997~2009)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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