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방송 잘봤습니다.

하와이의 사진신부들

에스더 정희권 아리나가 (94) 한인 이민 2세 저는 에스터 정희권 아리나가 입니다

고시
대미국 하와이 정부의 명령을 받아 왼쪽에 적힌 내용과 같이 공포함
하와이 군도는 기후가 온화하고 학교가 많고 영어를 가르치며 학비가 무료다 직업 얻기가 쉽고
월급은 한국 돈으로 57원가량이다
(중략)

유순
사진신부, 당시 20세
내 나이 스무 살에 할아버지(신랑)는 마흔 네 살 많이 차이 나지

故 이덕금
사진신부, 당시 20세
(신랑은) 스물다섯 살 때 찍은 사진을 보냈어

故 이덕금
사진신부, 당시 20세
(만났을 때는) 마흔세 살이었어요





사진신부들은 왜 고향집을 떠나 가족들을 두고 이 먼 곳까지 왔을까?

난 그게 늘 궁금했어


휴커를 (1871~1943)
진주에 거주한 최초의 의료 선교사로 진주교회, 광림학교, 배돈병원 등을 설립했다


故 김차순
사진신부, 당시 15세
돈이라도 모아서 한국에 보내야 한다.
그때는 한국에 돈도 제대로 못 보내잖아요

故 이기문
사진신부, 당시 19세
그때 농장에서 부인구제회에서 떡, 묵도 만들어서 팔고 기름 장사도 하고 별 걸 다했습니다. 달걀 장사도 하고

故 천연희
④ 사진신부
독립운동 한국에서 벌어질 때 "내가 그런 거 다 챔피언이야



다이아몬드 헤드 추모공원 / 하와이 호놀룰루

길찬록 (천연희의 남편)
아버지는 농장에서 일하는 술꾼이었어요












다른 일꾼들은 한 달에 18달러를 받았는데 아버지는 한 살 어리다고 16달러 받으신 걸 마음에 담아두셨어요





故 천연희
사진신부, 당시 19세
“마꾸리(Makule)”라는 말이 하와이 말인데 "늙었다'는 말이야














故 김차순
사진신부, 당시 15세
그렇게 할 수밖에 없잖아요 우리는 독립해야 하니까요

1920년도 중반쯤에 독립선언서 포스터를 만들어서 독립 기금을 모금해서 약 2천 달러를 모았고



여성개화운동의 선구자이신 그는 사진신부로
미국 하와이에 이주 그곳에서 사업과 독립운동을
하시는 남편을 도와 따뜻한 가정을 이루시고 조국의 광복과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해 평생을 이제 사랑하는 조국 땅에 묻히시었으니
헌신하셨습니다.
부디 편히 잠드소서.



교회와 조국을 향한 사랑과 헌신에 대해서도 알게 됐어요











열일곱, 열여덟 나이에 사진 한 장 들고 하와이에 온 그녀들에게는

누구도 이 여성들의 용기를 잊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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